인사말 연설문

세계의 명연설- 패트릭 헨리, 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재첩국 2007. 10. 19. 15:19

스피치114- 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의장 각하! 하원에서 방금 연설한 매우 훌륭한 분들의 능력은 물론 애국심에 대해서 나보다 더 높이 존중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같은 문제라도 흔히 저마다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그분들의 것과 정반대되는 의견을 품고 있는바, 그 생각을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말한다고 그분들의 인격에 불명예스러운 일로 생각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예절을 갖출 때가 아닙니다. 하원 앞에 내놓은 문제는 이 나라에 지극히 중대한 것입니다. 나로서는 그것이 자유냐 노예냐의 문제나 다름없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토론의 자유는 이 문제의 중요성에 비례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는 진실에 닿을 수 있고, 하느님과 조국을 위하여 우리가 짊어진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절박한 때에 남의 감정을 해치거나 않을까 염려하여 나의 의견을 뒤로 미룬다면, 나는 나의 조국에 대한 반역죄와 현세의 모든 왕들보다 더 높이 숭배하는 하느님의 권능을 불신하는 죄를 저지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의장 각하! 인간이 환상적인 희망에 빠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기 쉽고, 저 '사이렌의 노래(그리스 신화로 영국 정부의 감언이설을 말함)'를 귀담아 듣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는 사이렌에 홀려 가축(家畜)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유를 위해 위대하고도 벅찬 싸움에 참가하는 슬기로운 사람들의 역할입니까? 우리는 현세적(現世的)인 구원의 관심사나 다름없는 일에, 눈을 갖고도 보지 않고 귀를 갖고도 듣지 않는 자들로 처신하고 싶다는 말입니까? 나로서는 정신적 고통의 대가가 아무리 크더라도 진실의 전체를  알려고 하며, 최악의 경우 알고 거기에 대한 대비책을 기꺼이 강구하겠습니다.

 

나에게는 앞길을 밝혀 주는 등불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경험의 등불입니다. 나는 과거를 기준으로 미래를 판단하는 방법밖에 알지 못합니다. 과거에 의해 판단할진대, 지난 10년간 영국 내각의 행동 속에, 여러분이 자기 자신과 하원을 위로하는 데 흡족하게 생각해 왔던 그 희망을 정당화할 만한 무엇이 있었는지 나는 알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청원을 최근에 받아들였던 저 음흉한 미소란 말입니까? 여러분 믿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발을 묶어 둘 올가미가 될 것입니다. 달콤한 키스에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우리의 청원을 정중하게 받아들였던 일이 우리의 바다를 덮고 우리의 땅을 어둡게 하는 저 전쟁 준비와 도대체 어떻게 일치하는 것인지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함대와 군대가 사랑과 화해의 작업에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까? 우리가 화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환심을 다시 얻으려고 무력 개입이 불가피했다는 겁니까?

 

여러분, 잘못 생각하지 맙시다. 저 함대와 군대는 전쟁 수단이요, 복종 강요의 도구입니다. 왕들이 호소하는 마지막 논법입니다. 여러분, 저 군사적 배진(配陣)의 목적이 우리에게 항복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다른 어떤 가능한 동기라도 있다고 지적해 낼 수 있습니까? 대영제국(大英帝國)이 세계의 어느 지역에 해군과 육군의 총병력을 투입할 만한 어떤 적군이라도 있다는 거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병력은 우리를 제압하기 위한 것이지 다른 누구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병력은 영국 정부가 오랜 세월 벼려서 만든 쇠사슬로 우리를 동여매고 못을 박기 위하여 파견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과 맞설 무엇이 있습니까? 논의를 해보시겠습니까?

 

여러분,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논의를 계속해 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해서 무슨 새로운 제안이라도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를 할 수 있는 한의 온갖 각도에서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두 헛수고였습니다. 그렇다면 애원과 굴욕적인 탄원에 호소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다 써버리지 않았던 무슨 조건이라도 남아 있습니까?

 

여러분, 이젠 제발 헛된 희망을 걸지 맙시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쪽으로 휘몰아쳐 오는 폭풍우를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다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진정도 해보았고 항의도 해보았으며 애원도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왕좌(王座) 앞에서 꿇어 엎드리기도 했고, 영국 내각과 의회의 포악스런 손짓을 막아 달라고 왕의 중재를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청원은 무시되었고 우리의 간언(諫言)은 가중된 폭력과 치욕을 초래했을 뿐이며, 우리의 탄원은 묵살되었습니다. 우리는 왕좌 밑에서 모멸(侮蔑)을 받으며 걷어 채이고 쫓겨났습니다. 이런 일을 얻으려 한다면 우리는 헛되이 평화와 화해의 달콤한 희망에 빠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희망을 걸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바란다면,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얻고자 싸워왔던 존귀한 대권(大權)을 침해되지 않게 보조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싸웠고 우리 항쟁의 영광스런 목적을 획득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했던 그 고귀한 투쟁을 비열하게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거니와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무력(武力)과 만군(萬軍)의 주(主)이신 하느님께 호소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지금 남아 있는 전부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우리가 약하다고 말합니다. 매우 무서운 적과 상대할 능력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강해질 수 있겠습니까? 내주(來週)입니까? 내년입니까? 우리가 완전히 무장 해제당하고, 영국군 보초가 우리의 집집마다 배치되어질 그때입니까? 우리는 우유부단과 무위무책(無爲無策)으로 힘을 모을 수 있겠습니까? 적이 우리의 손발을 꽁꽁 묶어 놓을 때가지, 그저 드러누워서 헛된 희망의 허깨비를 부둥켜안고서야 어찌 효과적인 항쟁의 수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자연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우리의 손안에 놓아주었던 그 수단을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약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바와 같은 나라에서 자유의 거룩한 큰 뜻으로 무장을 한 3백만의 민중은, 적이 우리와 싸우려고 파견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군사력에게도 난공불락(難攻不落)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단독으로 전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국가의 운영을 맡아 가지고 계신 공명정대한 하느님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전투에서 우리 편이 될 우군(友軍)을 일으켜 보내 줄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전투는 강자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방심하지 않고 민활하며 용감한 사람들에게도 유리한 것입니다. 여러분, 더욱이 우리는 표결(表決)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표결을 원하여 충분한 기초를 쌓았다면, 지금 논쟁에서 물러 나오기엔 너무 늦습니다. 항복하고 노예가 되느냐는 것 뿐, 후퇴가 없습니다. 우리를 묶어 둘 쇠사슬이 버려져 있습니다.! 쇠사슬의 쩔그렁 소리를 보스턴의 들판에서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 전쟁이여 올 테면 오라! 다시 말하지만 올 테면 오라!

 

의장 각하! 이 문제를 가볍게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평화, 평화를 외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없습니다. 사실상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북쪽으로부터 휘몰아쳐 오는 다음의 질풍은 우리들의 귀에 울려 퍼지는 전쟁의 격돌 소리를 전할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은 벌써 싸움터에 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여기서 한가롭게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무엇을 가지고 싶다는 것입니까? 쇠사슬과 노예의 대가로 얻어지는 고귀한 생명입니까, 달콤한 평화입니까? 단연코 그런 일이 없도록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길을 택하려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를 알 뿐.

 

 

※ 이 연설문은 1775년 3월 28일, 패트릭 헨리가 버지니아주 하원의회에서 행한 열정적인 연설로서 불후의 명언인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로 끝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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