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114- 반역자 사형에 대한 항변(抗辯)
- 로버트 에미트(Robert Emmet)
재판관님들! 나에게 법에 따른 사형 언도를 내리지 말아야 할 무슨 이유가 있겠으며, 그 사형 언도에 대해서 또한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들의 예결(豫決)을 변경시킬 아무런 의사도 없고 당신들이 여기서 선고하게 될 형량(刑量)의 경감을 기대하고 무슨 발언을 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사나이답지 못한 짓입니다. 나는 당신들의 판결을 따라야 할 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생명보다 더 관심을 두고 있으며, 당신들이 한사코 부수려고 했던 압박받고 있던 이 나라의 현재 상황에서 그것은 당신들의 '직책상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만' 이라는 이야기를 말 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거짓 고소와 거기에 설상가상격으로 무겁게 내리 덮친 무고(誣告)로부터 나의 명성을 구제해야만 된다는 이유에 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현재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당신들의 마음이, 내가 지금부터 하려고 하는 발언에서 최소한도의 감명이라도 받아들일 만큼 순결하리라고 나는 생각지 않습니다. 즉, 이처럼 구속적인 성격을 띤 법정 한복판에다가 나의 인격의 닻을 내려놓고 싶은 심정은 조금도 없습니다. 나는 오직 인격이 현재 파괴적인 힘으로 휘몰아치고 있는 폭풍우로부터 피신할 수 있는 포근한 항구를 찾을 때까지, 더러운 편견의 입김에 오염되지 않는 당신들의 기억 속에 떠다니게 해주기를 바랄 따름이며, 그것만이 내가 가장 기대하는 바입니다.
당신들의 법정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 사형당한다면 나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군말 없이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육체를 사형 집행인에게 넘기는 법의 언도는 법무성을 통해서 그 법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나의 인격을 오명(汚名) 속에 처넣으려고 고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범죄는 어딘가 다른 곳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범죄는 이 법정의 언도 속에 있느냐 또는 이 파국에 있느냐를 후세의 사람들이 결정할 것입니다. 재판관님들!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은 운명의 고난과 타락되고 전복당한 인간들의 정신을 제압하는 권력의 폭력뿐 아니라, 조작된 편견의 고난과도 부닥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죽을 것이지만 그에 대한 추억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나에 대한 추억이 소멸되지 않도록, 그것이 우리 동포들의 깊은 관심 속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나는 이 기회를 빌어서 자신에게 뒤집어 씌워진 몇 가지 혐의 사실에 관해서 해명하겠습니다.
나의 정신이 포근한 항구로 흘러가 닿을 때, 조국과 덕행을 지키기 위하여 교수대에서 혹은 싸움터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던 순교적 용사들의 대열에 나의 영혼이 합세하게 될 때, 그 시간이 바로 나의 희망입니다. 나의 추억과 이름이 나보다 오래 살게 될 동포들에게 생기를 주리라고 믿습니다. 한편, 나는 득의양양한 마음으로, 천주(天主)님을 모독하면서 지배권을 높이 쳐들고 있는 저 배은망덕한 정부의 멸망을 하늘에서 내려다볼 것입니다. 그 정부는 삼림 속의 짐승을 다루듯이 사람에게 힘을 과시하며, 동생을 시켜 형을 덮쳐잡게 하며, 정부의 기준보다 좀 더 많거나 또는 더 적게 신을 믿거나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느님의 이름 아래 동료의 목을 그 친구가 조르게 하는 정부입니다. 그것은 폭력을 자행(恣行)함으로써 야기된 고아들의 울음소리와 과부들의 눈물로 포악스럽게 단련된 정부입니다.(재판관들에게 의해 제지당함)
나는 순결한 하느님께 호소합니다. 내가 곧 그 앞에 다가설 하느님의 보좌(寶座)를 걸고 나는 맹세합니다. 나보다 앞서 사살되어 사라져 간 우리 애국선열들의 피를 걸고 나는 맹세합니다. 나의 행동은 그 모든 위난을 거쳐 왔고, 나의 모든 목적은 내가 말로 표시한 신념에 의하여 결정되었을 뿐 그 목적의 구제책을 강구한 의도 이외의 어떤 것에도 좌우된 적이 없으며, 그리고 또한 나의 목적은 그토록 장구한 세월에 걸쳐 너무도 끈기 있게 진통을 겪어 왔던 우리 조국을 초비인간적(超非人間的)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의도에 의하여 결정되었다고 나는 맹세합니다.
황당무계하고 공상적인 것처럼 생각될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일랜드에는 조국의 그 고결한 과업을 성취할 일치단결과 역량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나는 자신 있게 믿으며 맹세하는 바입니다. 나는 깊은 지식이 초래한 확신과 그 확신에서 얻은 위안을 가지고 이렇게 진술하는 것입니다. 재판관님들! 당시들에게 잠시나마 불안을 주기 위한 하찮은 만족감에서 내가 여기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지 마십시오. 이전에 한 번도 언성을 높여 가며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의 조국에 관한 매우 중대한 문제를 앞에 놓고, 그리고 오늘과 같은 이 기회에 허위를 주장함으로써 자기 인격을 후세에 내맡기는 모험을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재판관님들!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자기의 비명(碑銘)이 남겨지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그와 적대적인 권력의 손에 무기를 남겨 두고 가지 않을 것이요, 또한 포악스런 권력이 그에게 지정해 주는 무덤 속에서도 끝까지 보존하고 싶어 하는 그 결백한 청렴을 저버리는 파렴치(破廉恥)를 남겨 두고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재판관들에 의해 제지당함)
다시 말하겠습니다만, 내가 언급한 이야기는 부럽다기보다 오히려 불쌍한 처지에 놓인 재판관 여러분을 의식하고 한 말이 아닙니다. 나의 발언은 우리 동포를 위한 것입니다. 이곳에 참다운 아일랜드인이 있다면, 나의 최후 진술이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시달림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게끔 해주십시오. (재판관들에 의해 제지당함)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법에 따라 형을 언도하는 것이 법관의 의무라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법관들이 피고인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인간적인 말을 건네며, 법의 피해자를 열심히 타이르고 범죄적인 행동을 하여 유죄 판결을 받게 된 동기에 관해서 피고인이 의견을 진술토록 자비심을 베푸는 것이 법관의 의무로 생각한다는 것을 나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법관 중에는 실제로 그렇게 한 것이 자기의 의무였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그 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정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신들의 정책에 의해 사형 집행인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 불행한 죄수가 그의 행동의 동기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설명할 수 없고, 그가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 원리 원칙을 변호할 수 없게 된다면, 당신들의 기관(機關)이 자랑하는 그 자유, 당신들의 법원이 뽐내는 공명정대함, 인자함, 그리고 너그러움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
재판관님들! 고의적인 교수대(絞首臺)의 추행에 인간의 마음을 수치스럽게 굴종시키는 것이 분개한 재판제도의 일부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강요당한 치욕이나 교수대의 공포보다 나에게 더 고약한 것은 이 법정에서 나에게 뒤집어 씌운 터무니없는 누명의 그 수치감입니다. 재판관님! 당신은 판사이며 나는 가정(假定)된 죄인입니다. 나는 사나이며 당신도 사나이입니다. 우리는 무력에 의한 혁명으로 장소는 바꿔 놓을 수 있어도 사람의 인격은 결코 바꿔 놓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 법정의 피고석에 서서 나의 인격의 정당함을 감히 입증할 수 없다면, 당신들의 재판은 소극(笑劇)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이 피고석에 서서 나의 인격을 정당하게 변호할 수 없다면 당신들도 어떻게 정당하게 나의 인격을 비방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의 그 부정(不淨)스런 정책으로 나의 육체가 사형 선고를 받게 되는데, 게다가 나의 혀는 침묵을 지켜야만 하고 나의 명성이 사람들의 비난을 사도록 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사형 집행인은 나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동안 나는 나의 인격과 행동의 동기를 당신들의 중상모략에 맞서 끝까지 변호할 것입니다. 생명보다도 명성이 더 귀중한 사람으로서 나는 죽은 다음에도 살아남을 그 명망을 올바르게 다루는 데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명망은 내가 존경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바치는 것조차 자랑스러운 사람들에게 남겨 놓을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유산입니다. 재판관님! 인간으로서 우리는 최후 심판의 날에 만인공동(萬人共同)의 법정에 나와 서야 할 것입니다.
그때에 전 인류의 심판관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누가 가장 고결한 행동에 참여했고, 누가 가장 순수한 동기를 위하여 행동했는가를 보여줄 것이요, 우리 조국의 압제자들 혹은……(재판관들에 의해 제지당함)
재판관님! 심리(審理) 과정에서 야심적인 인간이라고 규탄 받고, 용렬한 생각으로 자기 나라의 자유를 배척하려 했다고 뒤집어쓴 그 부당한 비방을 받으며 죽어갈 사람이 만인의 눈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합법적인 권리를 빼앗겨야 합니까? 무슨 까닭으로 재판관님들이 나를 모욕하는 것입니까? 아니 애 사형이 선고되어서는 안 되느냐고 나에게 되물음으로써 도리어 재판을 모독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재판관님! 형식의 규정에 따라 당신들이 심문을 하고, 역시 형식에 따라 답변의 권리도 있는 듯한데, 그 점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절차 과정은 물론 없어도 그만인 것입니다. 그리고 재판의 그 전체 형식도 역시 있으나마나한 것입니다. 당신들이 배심(陪審) 명부에 오르기 전에 정청(政廳, the Castle)에서 이미 사형이 언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재판관들은 단지 신탁(神託)의 목사일 뿐입니다. 따라서 나는 복종합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형식(법률상의 모든 절차 과정)을 주장합니다.
나는 지금 프랑스의 밀정(密偵)으로 기소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간첩으로! 그렇다면 무슨 목적이겠습니까? 내가 우리 조국의 독립을 팔아 버릴 욕심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이겠습니까? 그것이 나의 야심의 목적이었던가? 그리고 그것이 정의로워야 할 법정이 반박을 화해시키는 방식입니까? 나는 결코 밀정이 아닙니다. 나의 야심은 권력이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고, 독립 성취의 영광을 받으며 조국의 해방자들 사이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그것이었습니다. 우리 조국의 독립을 프랑스에 팔아넘기려 했다니! 그렇다면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이 지배자의 교체를 위한 것이었겠습니까? 아니오! 그러면 그것은 야심을 위한 것이었소! 오, 우리 조국, 그것이 나를 좌우할 수 있는 개인적인 야심의 대상이었을까? 그것이 나의 행동의 정신이었다면, 나는 나의 교육과 운명, 우리 집안의 신분과 중요성 때문에 우리의 가장 거만한 압제자들 속에 끼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조국은 나의 우상(偶像)이었습니다. 나는 조국에 온갖 이기적인 감정과 온갖 애정적인 감정을 다 바쳤습니다. 조국을 위하여 나는 지금 생명을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 하느님! 아니 재판관님, 나는 아일랜드인으로 행동했으며, 외국의 무자비한 폭정의 굴레로부터, 그리고 국내의 도당(徒黨)들이 한술 더 떠서 괴롭히는 그 멍에로부터 조국을 해방시킬 결의에 불타 있었던 것입니다. 국내 도당들은 영국과 손을 맞잡은 협력자이며 동포 살해범의 하수인입니다.
그것은 화려한 사치와 의식적인 부패의 외관과 공존하는 추행입니다. 이처럼 이중으로 굳게 처박힌 전제정치(專制政治)로부터 우리 조국을 구해 내겠다는 것이 나의 소망이었습니다.
나는 지구상의 여하한 권력도 손이 미치지 못하는 높은 곳에다 우리 독립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을 이 세계에서 그처럼 자랑스러운 자리에 올려놓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물론 프랑스와의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호 이해관계가 용납되고 요청되는 한에서만 그랬던 것입니다. 프랑스가 우리의 순결한 독립과는 모순되는 어떤 권력을 잡으려 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의 멸망을 자초하는 도화선(導火線)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원조를 구했습니다. 전시(戰時)의 원군(援軍)으로서, 그리고 평화시의 동맹으로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확약을 얻었기 때문에 우리는 원조를 구했던 것입니다.
만약 프랑스인들이 우리 국민의 소원과는 관계없이 침략자나 적으로 이 땅에 들어오게 된다면, 나는 필사적으로 그들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동포 여러분! 나는 여러분들이 한 손에 칼을 다른 손에 횃불을 들고 바닷가에서 그들과 대결하기를 권유할 것입니다. 나는 파괴적인 전쟁의 맹위를 떨치며 그들과 맞붙어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땅을 더럽히기 전에, 자신들이 타고 온 배에서 신의 제물로 바쳐지도록 나는 우리 동포를 격려하여 고무시킬 것입니다. 만약 적으로서의 프랑스군이 상륙에 성공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우수한 군세(軍勢) 앞에서 우리가 부득이 밀리게 된다면, 나는 이 땅의 모든 풀잎을 불사를 것이며, 그리하여 자유의 마지막 참호(塹壕)가 나의 무덤이 될 것입니다. 만약 싸우다 쓰러지면, 내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과업을 우리 동포들이 성취하도록 그들에게 마지막 위탁물로 남기고 나는 떠나갈 것입니다.
외국이 우리나라를 정복하게 된다면, 그때엔 죽음보다 삶이 더 쓸모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원군(援軍)이 적으로서 상륙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프랑스의 도움을 바랐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일랜드 국민이 외부의 도움을 받을 만하다고 프랑스와 세계에 입증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아일랜드 국민이 노예 상태에 분노를 느끼며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주장할 각오가 되었다는 것을 프랑스와 세계에 입증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워싱턴'이 미국을 위하여 획득한 바와 같은 독립의 보장, 나는 우리 민족을 위해 확보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단련되고 씩씩하며 과학과 경험이 풍부한 무용(武勇)만큼이나 우리에게 중요한 원조, 선(善)과 악을 식별하며 우리 인품의 거친 면을 닦아 윤을 내게 할 원조, 나는 그것을 압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프랑스인은 이방인(異邦人)으로 우리 땅에 올 것이지만, 그들은 우리의 위난을 함께 나누고 우리의 운명을 높여 준 다음 친구로서 떠나갈 것입니다. 이상 언급한 것이 나의 목적이었습니다. 새로운 십장(什長)을 맞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낡은 폭군을 물리치기 위해서, 나의 의도 역시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것만이 아일랜드 국민다운 것이었습니다. 그런 목적 달성을 위하여 나는 프랑스로부터 도움을 바랐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적이라 하더라도 프랑스는 우리나라 한복판에서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적'만큼 무자비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국을 해방시키려는 분투에 있어서의 그 중대성, 그것은 아일랜드 국민의 단결의 중추(中樞)라고 생각되는 것으로서, 재판관 여러분의 표현을 빌면 '음모의 생명과 피'이기도 합니다만, 그 중대성을 실천했다는 죄목으로 나는 기소되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지나치게 예우(禮遇)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하급 장교에 불과한 이 사람에게 고급 장교의 모든 명예를 주었습니다. 이 음모의 공작에는 나보다 더 우위에 있을 뿐 아니라, 당신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당신들의 지위보다 더 우위에 있는 인사들이 가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재능과 덕행의 찬연한 빛 앞에서 나는 정중한 경의를 표하면서 머리를 숙이는 바입니다. 그분들은 당신들의 친구로 불려지는 것을 불명예스럽게 생각하며 피로 물든 당신의 손을 잡고 악수함으로써 스스로를 욕되게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인사들입니다. (재판관들에 의해 제지당함)
재판관님! 당신들이 중간적인 집행인에 불과한 그 독재 체제가 나를 살해하기 위해 세워 놓은 단두대에 이제 가게 될 이 사람에게, 압제자에 맞선 피압박 민족의 투쟁에서 지금까지 흘렸고 앞으로도 흘리게 될 그 모든 피에 대하여 해명할 책임이 있는 이 사람에게 당신은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당신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려는 겁니까? 아니, 내가 당신의 말을 반박해서는 안 될 그런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까?
최고 절대의 심판관이며 전능하신 하느님 앞으로 다가가서 나의 전 생애의 행동을 책임진다고 말하기를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 어차피 죽어갈 운명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 자에 의하여 내가 공포를 느끼며 허위 진술되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 죄 많은 청사(廳舍)에게 흘린 무고한 그 모든 피를 모아 큰 저장 탱크에다 쏟아 넣을 수만 있다면, 그 속에서 수영할 수 있는 당신들 재판관에 의해 또한 내가 공포를 느끼며 허위 진술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까? (재판관들에 의해 제지당함)
어떠한 사람도 내가 죽었을 때, 나에게 불명예를 뒤집어씌우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오. 조국의 자유와 독립의 대의명분과는 관계없는 무슨 운동에 내가 가담했을지도 모른다고 믿음으로써 누구나 나에 대한 추억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혹은 우리 동포들이 억압과 비참한 상황에 빠져 있는데, 내가 권력의 유순한 앞잡이였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아래 누구도 나에 대한 추억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임시 정부의 선언이 우리 견해를 대변합니다. 그 선언문은 국내에서의 만행이나 타락, 또는 해외에서의 복종·굴종이나 배반을 합리화할 목적으로 절대로 그릇되게 해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의 대내외적(對內外的)인 압제자에 저항하는 바와 똑같은 이유로, 여하한 외부의 압제자에게도 결코 항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나는 조국의 문턱에서 싸웠을 것이며, 적군은 나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야만 비로소 우리 땅에 침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질투심이 많고 경계심이 강한 압제자의 위협과 무덤의 속박에 몸을 내맡겼던 나로서는, 동포에게 권리를, 조국에 독립을 부여하는 것만이 유일한 사명인 것입니다. 중상모략에 시달리는 내가 그 모략에 분개하고 뿌리치질 못한다면…… 아니요, 단연코 안 될 말입니다.
빛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덧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아끼고 걱정해 준다면……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고귀한 영혼이여!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당신 아들의 행동을 자세히 내려다보십시오. 저의 젊은 마음속에 서서히 불어넣으려고 당신이 늘 걱정했던 그 도덕 원리와 애국심, 그것으로부터 제가 잠시나마 벗어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를 살펴보십시오.
재판관님들! 당신들은 이 희생적 행위를 보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찾고 있는 피〔血)는 당신들의 '희생자'를 둘러싸고 있는 인위적인 공포 정치에 의해서도 얼어붙지 않습니다. 그 피는 하느님이 고귀한 목적으로 창조했으나, 당신들이 한사코 파괴하려고 하는 수로(水路)를 따라 따뜻하고 평온하게 순환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신의 가호를 빌만큼 슬픈 목적을 위해 창조된 수로를 흘러갈 피인 것입니다. 좀 더 참아 주시오! 몇 마디 덧붙여야겠습니다. 나는 이제 곧 차갑고 영원한 침묵의 무덤으로 떠나게 됩니다. 나의 생명의 등불은 꺼져 가고 있습니다. 나의 생애는 끝났습니다. 나의 무덤은 입을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무덤의 심연(深淵) 속에 가라앉게 됩니다! 이승을 하직함에 있어서 한 가지만 부탁하겠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나에게 침묵의 자비(慈悲)를 베풀어주었으면 하는 부탁입니다! 누구도 나의 비문(碑文)을 쓰게 하지 마시오. 나의 행위의 동기(動機)를 알고 어떠한 사람도 지금 그 동기를 변호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나의 동기를 헐뜯는 여하한 편견도 무지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동기와 나를 어둠 속에서 편안히 휴식하게 해주시오. 다른 시대와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나의 인격의 진가(眞價)를 인정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나의 무덤에 비문을 새겨 세우는 일이 없도록 부탁드립니다. 우리 조국이 지구상의 모든 나라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게 될 때가 되면 나의 비문을 새겨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저대로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진술은 이제 끝났습니다.
※ 이 연설문은 1803년 9월 19일, 로버트 에미트가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즉석 진술한 불후의 명 법정연설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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