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사랑방

스피치가이드 전대수의 수필보기 - 어머니의 품속

재첩국 2007. 6. 20. 09:55

한국스피치교육센터

www.speech114.com

 

수필/ 어머니의 품속

                          

 어언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성동 땅이다. 그러니까 10년 전까지만 해도 성동 사람이었으며, 이곳에서 학원을 수년간 운영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학원을 운영하자면 교육열이 높은 강남으로 가야 한다는 판단에서 강 건너 송파구로 이사를 했던 것인데 정치 행사가 있을 때나 얼굴을 내밀었을 뿐, 이웃과의 정분을 나눌 기회가 많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인데 다시 뚝섬 사람이 된 것은 아마도 동물적 회귀본능이리라.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다시 성동에 돌아와 정착을 한 뚝섬. 그래도 30년의 연고가 있어 반기고 안아주는 이웃의 사랑을 받으니, 도심에서 숲으로 간 야생 동물의 심정을 알만도 하다.

 

 야생 동물이 동물원에서 사육사의 보호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태생지의 향수가 어찌 없겠는가. 콧등을 물씬거리는 덤불 속이나 울창한 숲의 향기가 그립기도 할 것이며, 계곡의 물소리나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새 소리가 애간장을 녹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즉, 그들의 시선은 마냥 숲을 향하고, 그 숲에 다시 안기게 되면 그곳이 바로 어머니의 품이 아니겠는가.

 

 성동구와 송파구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아 있음에 나 또한 강 건너편에서 성동을 바라보며 오늘을 기다려 왔으니, 다시 안긴 뚝섬은 어머니의 젖무덤이라고 해야 하겠다.

 

 누구나 어리광을 부리고 싶으면 뚝섬으로 오라. 뚝섬은 형제의 우애나 친지들의 넉넉한 인심을 나누어주는 곳이며, 어리광을 부리면 없는 젖도 먹여주는 곳이다. 출생지가 달라도 탁한 물이건 맑은 물이건 가리지 않는 한강의 너그러움으로 받아주는 곳이 뚝섬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풍경은 달라졌지만, 소박하고 너그러운 인심만은 아직도 넘쳐흐르는 곳이다. 한강의 강변을 따라 줄을 지어 늘어선 푸른 버들은 뽑혀 나가고 유원지는 사라졌어도 강변을 산책하면 가슴속으로 바람 한 점 시원스레 스며들고, 마주치는 눈길이 가슴을 열게 하는 곳이다. 

 

 한가로움이 더해 선착장으로 향하면 그 옛날의 유원지를 그릴 수도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공기총을 쏘며 인형을 사 주던 자리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으며, 지금은 잘려나가고 없는 민물 매운탕 집터나 보신탕집 자리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내딛으며 추억도 떠올릴 수 있으니, 방안에 들어앉아 매운탕 안주에 소주 한 잔 마시고, 버드나무 그늘에 놓인 평상에 앉아서 보신 안주에 소주잔 기울이던 ‘개미집’의 추억을 떠올릴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강변 산책을 나가게 되는데 뚝섬이 본고장인 사람들은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거니는 곳이 뚝섬 강변길이다.

 

 ‘H식당’의 K형도 틈만 나면 강변에서 조깅을 한다는데 나도 한 번 더불어서 따라 나서고 싶다.

 강변에 나서면 H네 형은 적당하게 부풀어오른 배를 내밀고 강남을 지긋하게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강 건너 논고개(논현동:論峴洞) 이야기를 하려나 모르겠다.

 

나도 제법 오랜 연고를 자랑삼아 ‘왕년에 나도 나룻배 타고 논고개 복숭아밭에 가본 사람’이라고 한 마디 할 것이다.

 

그러면 그 형은 어린 시절에 맨몸으로 한강을 헤엄쳐 건너던 무용담을 들려주고, 은모래와 금모래가 아름답던 유원지의 수영장을 그려나갈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서 ‘옛 경마장 자리에 ’뚝섬숲‘이 조성되고 있다’며 애향심을 불태울 것이요, ‘요즘, 아우님 큰딸 보기가 힘들어!’하며 우애도 보여줄 것이다.

 

 그렁저렁, ‘형님, 아우님’ 하다보면 해 저물고, 해 지면 ‘한 잔 어떠냐’고 하시겠지. 가는 곳이야 부담 없는 카페 ‘비어캣슬’일 터이니, ‘J 회장님을 모시자, L 아우님을 부르자’ 휴대폰이 시달리고, ‘금호동에 연락을 하자. 왕십리도 불러들이자’ 침이 튀길 것이요, 저녁상 물린 동네 누님들이랑, 친구들이랑 여남은 정꾼(?)들이 먼저 모여들어 방담(放談)이 끊이지 않겠지? 따스한 정을 감추지 못해 쉼 없이 생긋거리는 순애 씨의 눈매를 보는 것도 싫지 않으니, 에고 오늘도 12시안에 집에 들어가기는 글렀다.

 

 그래서 뚝섬을 남의 품속이 아닌 어머니의 품속이요, 어머니의 젖무덤 같은 곳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뚝섬 사람은 남이 아닌 형제라고 하지 않은가.


                  (2002년)

  

 

한국스피치교육센터

www.speech11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