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피치교육센터
수필/ 서리 집사 꼭지 떼기
도회지의 출퇴근길은 운전을 하기가 쉽지 않다. 출근을 서두르는 곡예운전자들 때문에 등골이 오싹거릴 때가 많고, 퇴근길에는 비집고 들어오는 곱지 못한 얌체운전자들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이래저래 복잡한 도회지의 출퇴근길은 믿음이 없으면 운전을 하기가 어렵다.
도회지의 거리는 가히 차량의 물결을 이룬다. 출퇴근길에 길게 늘어선 차량의 물결을 보면 시원스럽게 달리지 못하는 답답함이나 조급증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신호대기에 걸리거나 정체가 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윈도우 밖으로 고개를 삐즛이 내밀고 앞뒤를 살피는 사람도 있다. 아니, 답답함이나 조급증을 견디지 못하고 ‘어디 끼어 들 틈이 없나?’하고 눈치를 살피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안전운전 10여 년에 지금은 ‘녹색면허증’(무사고운전자)을 소지하고 다닌다. 그러니까 나의 운전 경력은 ‘초보운전’에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었다고나 할까.
나의 신앙도 이력으로 치자면 꽤나 오래되었다. 그러나 ‘돌팔이 신자’ 행세 10여 년이니, ‘녹색신앙증’을 받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이 된다. 아침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하루를 열어주심에 감사’드리고, 식사 때가 되어도 ‘감사기도’ 쯤은 드리는 믿음 생활이지만, 아직도 나는 성경 구절 하나도 제대로 알지를 못하니 신앙이란 운전 경력처럼 연륜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의 권유에 따라 교회에 입문을 하여 초보운전자가 운전을 할 때 앞 뒤 좌우 눈치를 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니기 시작한 교회였다.
물론, 이사를 하면 집이 바뀌듯이 사정에 따라 다니는 교회가 바뀌기는 했어도 무심코 드나드는 교회였으니, 믿음으로 말하자면 아직도 나는 초보운전자 수준을 면치 못한 입장이라고 해야 옳겠다. 절차상 학습을 받고, 어엿하게 세례를 받기는 하였으나, 시험을 치르기로 하면 유급(留級)감이 틀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배를 드릴 때, 성경 구절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찬송가를 부르는 수준도 아직은 동요를 부르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성경에서 금하도록 하고 있는 기호품을 나는 아직도 절제를 하지 못하고 있음에랴.
그런 내가 오늘은 교회에서 ‘서리 집사(署理執事) 재직증’을 받게 되었다. 아마, 내가 ‘서리’ 꼭지를 떼기 위해서는 성경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 말씀에 따라 행동에 옮겨야 할 것이다.
지난해에는 국회에서 국무총리 서리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대통령이 서리(署理)를 지명하여 국회의 동의를 얻는 절차인데 서리 꼭지를 떼는 조건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교육자 출신 여성 J씨가 부결되어 ‘서리’에 머물고, 이어서 언론사주인 남성 J씨도 결격 사유가 발생하여 총리 자리에 오르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이런 사건들과 견주어 볼 때, 내가 안수를 받고 정식 집사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절제와 믿음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리라. 아침에 일어나면 감사 기도를 드리고, 운전석에 앉으면 지켜주실 것을 믿는 나를 하나님께서는 내려다보고 계실 것이다. 예배당에 들어설 때마다 옷에 배인 연초 냄새 때문에 가슴에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나를 하나님은 알고 계실 것이며, 주석(酒席)에 앉아서도 기도를 드리는 내 마음을 알고 계실 것이다. 지킬 것을 지키지는 못해도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나의 마음을 하나님은 진정 알고 계시리라.
승용차 운전석에 앉으면 기도를 하는 것처럼 매사에 기도하며 조심조심 살아가면 나도 서리 꼭지를 떼고 ‘녹색신앙증’을 받을 수 있으려나?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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