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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가이드 전대수의 수필보기 - 사랑이 넘치 나이다

재첩국 2007. 6. 20. 11:11

 한국스피치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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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사랑이 넘치나이다 

 

 

나는 난(蘭)을 사랑한다. 관상용의 다년생 풀로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난을 나도 사랑한다. 난은 야생초이나 부유하고 지체 높은 사람의 가정에 가보면 응접실 의자 양옆으로 줄을 지어, 주인을 호위하듯 버티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가끔은 안방 윗목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것을 볼 수도 있다. 학교의 교장실이나 회사의 사장실에도 몇 그루의 난이 진열되어 있고, 심지어 세탁소나 복덕방에도 난은 사랑을 받으며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렇듯 난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식물이어서 난(蘭) 애호가들도 많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도 난을 길러보리라 마음먹고 있던 차에 목련처럼 탐스러운 꽃을 피우는 서양란을 선물로 받고 나서부터 난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아직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깊어져 버린 난 사랑. 지난봄에 내 집으로 들어선 난이 이처럼 나의 심신과 영혼을 묶어둘 줄이야.

 

스므남은 그루의 화초 한 가운데를 자리 잡고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지만, 외롭지 말라고 또 몇 그루의 서양란과 함께 동양란도 사다가 진열해 두고 기르게 되었다. 허나, 나는 아직 난의 내심(內心)을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난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지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고, 내 멋대로 난으로부터 기쁨을 얻곤 한다. 여린 듯 강하고, 가냘픈 듯하나 칼날처럼 비장한 잎사귀를 뻗은 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나 비속하지 않고, 매서운 것처럼 보이나 고상하며, 무엇보다도 끼를 부리거나 앙칼지지 않아서 좋다. 도심이 아닌 산중에서 이슬을 머금고 자란 청초한 난이기에 더욱 정이 간다.

 

서양란이나 동양란 모두 나에게 또 다른 의미를 주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생의 의미가 아니던가? 제 자리에 나서, 제 자리에서 생을 다하는 식물도 많으련만, 산골 바위틈에서 자라나 농장으로, 화원으로 그리고 우리 집에까지 오던 그 여로에 겪기 힘든 고초도 있었으리라.

 

하여, 나는 난을 대할 때마다 나에게 시집와서 전전긍긍 역경 속에서 살아온 아내를 생각하곤 한다. 아내를 생각하며 난을 보고, 만져보고 물을 주고, 그러다가는 분(盆)을 갈아주기도 하고 …….

 그러나 내 정성은 아랑곳없이 탈이 나기 시작한다. 난 애호가들이 알면 한 마디 할 일이지만, 난의 잎이 노랗게 변색이 되어 윤기를 잃어가고, 어느 잎사귀는 끝이 검게 타들어 가기도 하여 물을 바가지로 퍼다가 듬뿍듬뿍 주기도 하였다. 영양실조 현상으로 착각을 하여 수분공급을 많이 한 것인데, 이건 또 웬일인가? 얼굴의 기미처럼 검은 반점이 잎사귀마다 번지고, 난의 뿌리가 녹아버린다.

 

난을 알지 못하면 난을 사랑할 자격이 없나보다. 아무리 세심한 배려를 하고 애정을 보내도 축 늘어져 버린 잎사귀를 보면, 난의 잎이 밉기 전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져 가위로 싹둑 잘라버린다. 그러고 보면 하도 측은하여 고개를 기웃하고 난을 살피게 되는데, 극성스레 난을 대하는 나의 행동이 우습게 보였던지 아내가 질투 섞인 말투로 한 마디 한다.

 "사랑이 넘치네요."

 

나는 그만 숨겨 둔 연인과의 밀회를 들키기라도 한 듯 얼굴이 붉어지고 만다. 그리고는 이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난초의 난(蘭)자도 제대로 모르면서 난을 기르다가 병들게 한 것과 순진한 시골 색시 데려다가 고생시킨 자신이 답답해서이다.

 

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도, 단발머리 아내는 난처럼 청초하다고 할까. 아무튼 순수했었다. 그러나 주인 잘못 만난 난처럼 역경의 흔적들이 볼수록 많아진다. 시들어지기엔 아직 이른 나이임에도 벌써 수북히 돋아난 흰 머리카락, 찌든 생활의 자국으로 파인 주름살을 볼 때면 차마 얼굴을 마주 대하기 미안할 정도가 아닌가? 아마도 나는 내 아내를 잘 모르고 사랑했나 보다. 지금 내가 난을 사랑하는 것처럼.

 

난은 말이 없어서 좋다. 그저, 내가 바라보기만 해도 만족한 양 잎을 살랑거리고, 더 이상 잎사귀를 잘라내지 않기를 바라는 정도의 소망을 간직한 듯하여 부담 없이 좋은 식물이다.

 

내 아내도 말이 없는 편이다. 때로는 삶에 지쳐 푸념이라도 하련만 내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는 아내. 난처럼 적당히 강하면서 보드라운 여심을 간직한 그런 나의 아내, 와이셔츠에 묻은 입술연지를 인주밥이라고 말하면, 그것이 변명인 줄 알면서도 변명해 준 것만으로도 되레 고마워하는 아내, 영광은 남편에게 바쳐주고 고통은 자신이 끌어안는 여인이 내 아내인데 난심(蘭心)을 아내의 마음에 견줄 수 있으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 머금은 난의 이파리처럼 청초했던 모습이 어느새 시들해진 몰골로 변했으니 난보다는 아내를 더 사랑하는 게 옳겠다. 아내에게서 넘치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난의 몫이 되리라.

 

우선, 아내의 빈 가슴을 사랑으로 채우고, 아내의 눈동자에서 촉촉하게 젖은 물기를 지우고 싶다. 잠들어 누운 아내의 곤한 얼굴에서 찌든 때를 지워주고 싶다. 외로운 어깨를 곱게 감싸주고, 한 번 꼬옥 껴안아주고 싶어진다. 그렇게 사랑이 스며들고 넘쳐나면 그때 난을 배우고, 난을 사랑하리라.    


                               (19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