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사랑방

스피치가이드 전대수의 수필보기 - 목소리

재첩국 2007. 6. 20. 11:35

한국스피치교육센터

www.speech114.com

 

 

수필/ 목소리

 

 

나이만큼 목소리가 거칠어져 버렸다. 비바람에 부딪치고 눈서리를 겪다 보니 빛바랜 모포처럼 색깔도 순수하지 못하다.

 

 산골 외딴 집에서 첫울음 울며 태어난 아기가 작은 가슴으로 너무 많은 것을 겪었다. 초가지붕을 거두고 기왓장을 얹는 작업도 보았고, 폐허를 풍요로 가꾸는 광경도 보았다. 내 자신을 위한 몸부림도 쳤고, 나와 동류인 민중의 짓밟힘과 억울함도 더불어 당하며 느껴왔다. 그들의 한숨소리, 신음소리, 울부짖음 소리도 함께 토해내며 삶을 아파하다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나 보다.

 

나는 ‘날몰’ 마을의 ‘땅골’, 외딴 산골짜기에서 전전(戰前)에 태어났다. 산새소리와 매미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으며, 때로는 산골짜기를 맑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으므로 나의 목소리는 그 소리들을 닮았을 것이다. 이따금 쌕쌕이의 요란한 소리와 화차의 목쉰 소리를 듣기는 하였으나 그 소리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었다. 나의 목소리는 티가 없었다. 그러나 사람의 목소리는 세파 따라 변하는 것.

 

사람의 목소리는 성격에 따라서 다채롭게 나타나며 감정에 따라서 변덕이 심한 것이다. 외향적인 사람은 시원스레 트이어 나타나며, 내향적인 사람은 답답한 막힘이 느껴진다. 기쁠 때는 밝게 살아 나오고, 슬플 때는 어둡게 죽어 들어간다.

 

나는 가끔씩, 거칠고 강한 목소리에 대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때마다 과격함과 급박함, 그리고 긴장감도 느끼게 된다. 우리 인간의 의사 표현을 목소리로 할 때 큰소리가 필요한 경우는 있으나, 작은 소리가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마치, 달빛 아래 흐르는 사랑의 숨결처럼. 그러나 나는 요즘, 다양한 욕구의 톤(tone) 높은 목소리를 자주 들으며, 소리의 낭비를 듣고 본다.

 

웅변대회장, 어린이들의 웅변이 절정(Climax)을 발악으로 끌어낸다. 데시벨(Decibel)로 어느 정도일까? 나의 목소리 공해의 공간에 앉아 있음을 느끼며 그 공간을 빠져 나오고 싶어진다.

 왕십리 음악다방, 생음악에 재수생들의 아픔이 헝클어져 나뒹군다. 나는 커피 반잔을 채 마시지 못하고 일어선다.

 

동숭동 대학로, 토요일 오후는 목소리가 높은 날, 기본권 수호의 소리에서부터 투쟁의 소리와 민주화의 소리가 높다. 문화의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

 

여의도 의사당, "숨겨진 비밀은 아름답다"는 목소리에 "진실은 밝혀야 한다."는 높은 목소리로 기를 꺾는다. 낮은 목소리가 어울리는 여의도동 1번지가 될 수는 없을까?

 

 정책당국자, 우리 모두에게 꿈과 희망의 동산으로 안내하는 밝은 목소리는 언제쯤 들려줄 것인가? 그 목소리가 환하게 퍼져 나가 어두운 곳까지 비춰줄 그날은 언제쯤일까? 어둡고 거칠며 큰 목소리의 공해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랑을 말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는 밝고 따뜻하였으리라. 자비를 말하던 석가모니의 목소리는 낮고 온화하였으리라. 홍익인간을 말하던 단군 한배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은근하였으리라.

 

 진시황과 연산군의 목소리, 마르코스의 팔레비, 그리고 이디 아민의 목소리는 어떠하였을까?

 나는 거칠고 강한 목소리를 듣지 않는 귀를 갖고 싶다. 숨결 하나만으로 사랑을 이어지고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로 인간의 영혼을 흔들어 주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 귀를 가슴속에 달고 싶다.

 나는 예전의 산골소년이 아니므로 그 목소리를 되찾을 수는 없다. 이제 나는 40대이다. 지금의 내 목소리만이라도 지키고 싶으며, 지금에서 멈추고 싶다.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