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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가이드 전대수의 수필보기 - 설날

재첩국 2007. 6. 20. 11:33

한국스피치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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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설  날

 

금년에도 설 연휴를 맞아 귀향하는 사람들이 대이동을 하므로 열차나 고속버스는 만원(滿員)이다. 고속도로도 차량의 물결이라는 보도를 접한다.

 

 뼛속을 뚫는 경제 한파가 덮치고, 곡간 사정은 덜 좋아도, 대 명절에 어찌 고향을 찾지 않을까? 가족의 외식비 줄이고, 자식들의 과외 학습비도 줄이고, 택시 대신 대중교통 이용하며 모은 몇푼 돈으로 고향의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에게 줄 선물꾸러미를 사는 사람들.

 

그리고 선물이 가벼우면 마음이 무거울 터이나 맞이하는 마음도 이심전심이니, 값비싼 선물 대신 따사로운 정을 가슴에 안고 가는 고향길이다.

 

그러나 고향을 두고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몇 분 어른들께 예의만을 갖추고, 맹위(猛威)를 떨치던 강추위가 물러간 강변을 거닐어본다. 유유히 흐르던 한강 물도 꽁꽁 얼어붙었다. 기온의 강하에 따라서 얼어붙은 빙판 아래로 물줄기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며 '나'를 생각한다.

 

저 강줄기는 태백의 유곡(幽谷)에서 발원(發源)하여 도도히 황해(黃海)로 흘러가지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어머니의 탯줄로부터 생성(生成)하여 한갖 혼령이 되어 저승길로 가는 인생이거늘 부모님 산소에 성묘조차 하지 못하고, 이순(耳順)이 되어 가는 형님께 세배를 못하다니......

 세파에 휩쓸려 덧없이 흘러가는 내 인생을 본다. 흐르는 저 강물은 무수히 많은 변전(變轉)을 거듭하면서도 예던 길 지금도 흐르지만, 나는 내 뜻대로 물줄기를 잡아나가지 못하고 세태(世態)에 휩쓸리고 있지 않은가?

 

의연(毅然)하게 흐르는 강물과 세파에 밀리며 살아온 나를 두고, 우주 만물 중 한갖 작은 점에 불과한 나 자신에 비하여 그 무게와 깊이가  큰 한강을 견주어 본다.

 

심산(深山)의 은은하게 나부대는 바람 따라 싱그러운 향기를 싣고 흐르는 한강. 흐르며 흐르며, 돌멩이들을 간지럽히고, 대화하고, 그리고 물고기들의 밀어(密語)를 들으며 흐르는 한강. 때로는 난류(亂流)의 파란(波瀾)을 겪으면서도 자연의 신비를 품고, 깊은 전설을 간직한 한강의 도도함을 보면서 나이를 계산하고, 어린 시절을 반추해 본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설날을 그리워해 본다.

 우리에게 설날은 최대의 명절이며, 설날은 즐겁기만 하였다. 몇 밤만 자고 나면 설날일까 가슴 설레며 기다렸었고, 그믐밤에는 잠을 설치기가 일쑤였다.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는 무명베 양복을 입고, 산소에 올라 성묘를 하거나, 이웃 어른들을 찾아 세배 다니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그 보다도 세뱃돈 받고, 많이 먹고, 놀이하는 그런 설날은 가슴 벅차도록 즐거운 명절이었으므로 눈을 감고 잠 들어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침 일찍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산소에 가는 산길은 가파르고 멀어도, 눈길에 미끄러지고 찬바람이 귀를 때려도 신나기만 하였다. 증조(曾祖)와 고조(高祖)의 내력(來歷)을 알 수 있었으며, 두루두루 성묘를 마치고 나면 적어도 한 보름쯤은 즐거운 날들을 맞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정월 초하루만 설날이 아니라, 나의 어린 시절은 보름 내내 설날인 셈이었다.

 

달의 형체(形體)가 점점 두툼하게 보름달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즐거움은 더해만 갔다.

 찬 공기 마파람에 연(鳶)을 날리고, 제기를 차며, 팽이싸움을 하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누나들의 널뛰기 훼방을 놓고, 어른들의 윷놀이를 구경하며, 농악놀이의 꽁무니를 졸래졸래 따르거나, 폴짝폴짝 뛰며 추는 춤도 좋았었다.

 

그보다도, 보름날의 둥근 달이 둥실 떠오르는 것을 보며 논 언덕이나 밭 언덕으로 달려가 쥐불놀이 하는 재미는 콧등이 새까맣게 되도록 즐겁기만 하였다.

 

초하룻날에 먹는 떡국은 보름이 지날 때까지 입에 물리도록 먹어댄다. 콩떡(인절미)과 쑥떡도 딱딱하게 굳어지면 화롯불에 굽거나 밥솥에 넣어 쪄서 먹었다. 야산에서 꿩을 잡아 꿩고기를 떡국에 넣거나 꿩 대신 닭고기라도 넣어 끓이면 떡국 맛은 일품이었다.

 

그저 설빔이라고 무명 천으로 지은 새 양복에 무궁화 양철단추 반짝이며 뽐내고, 세배 다니고, 먹고, 놀이하는 설은 그렇게도 좋았었는데, 풍속도 많이 변했으며, 현실도 무던히 각박해졌나보다.

 설날은 한자로 세수(歲首)라고 하기도 하며, 년수(年首) 또는 신일(愼日), 원단(元旦)이라고도 한다.

 

그러던 구정(舊正)이 민속의 날이라고 불리우다가 다시 설날이 되었다. 신정과 구정의 싸움에 밀려 즐기지 못하다가 '민속의 날'이라 하여 공휴일이 되었으며, 설날이 복권(復權)되어 그믐날부터 연휴가 되었으니, 얼마나 즐거운 명절이랴. 이처럼 즐겁던 명절, 모처럼 맞이하는 설날에 한강변을 거닐다니……

 

내년에는 고향에 가야겠다. 조상도 찾고, 일가친지도 찾으며, 즐거운 명절을 맞아야지. 인생의 방향을 잃고 떠내려가지 말고, 추억을 싣고 생을 엮으며, 도도히 흘러가야지. 조상의 얼과 혼도 받아들이며, 한강처럼 그렇게 흘러가야겠다.



                                (19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