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피치교육센터
수필/ 이름 따라 흐르는 인생
길거리를 지날 때면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가게의 이름들. 뜻 모를 간판도 나 보란 듯이 고개를 내밀지만, 저마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나붙어 있다.
레스토랑은 서양식이요, 의상실은 불란서 파리 모드가 대부분이며, 업소에 따라서는 순 우리말 이름으로 나붙어 있는 것도 볼 수가 있다. 외래식 간판도, 외국의 전설이나 지명, 유명인의 이름이나 낱말의 뜻을 따르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겠지만, 흔하지 않기는 해도 순 우리말 간판을 발견할 때면 그 이름의 의미를 더듬어 보곤 한다.
간판 중에 '맛나당제과점'은 과자가 맛이 날 것 같고, '두발로'는 신발, '머리방'은 머리를 떠올리게 한다. 하기에 사람들은 간판의 이름이 암시하고 안내하는 대로 찾아들고, 가게가 성업이 되기도 하리라.
책의 제목이나 지역의 명칭도, 우주만물도 제각기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의미를 간직한다. 그 또한, 이름의 의미로 하여 사람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도 하고, 자신의 운명이 결정 지어 지기도 한다.
그 뿐이랴. 간단한 이름 하나가 사람의 정서와 영혼에 영향을 끼쳐 그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기도 하는 놀라운 위력을 보여 주기도 한다.
나는 본래, 내 이름의 큰대(大)자 따라서 나의 인생이 흘러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 큰일을 하자고 정치에 입문을 했던 것인데, 그 길이 험난하여 고난을 이겨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짓거나 작명인이 이름을 지을 때도 인생과 운명을 생각하여 지을 것이다. 내가 자식들의 이름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꽤나 고심을 했다.
나는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첫딸아이를 낳을 때, 어쩌면 그리도 가슴 설레고 마음이 들떴는지 모른다. 아내의 배가 불러오면서부터 아들일지 딸일지도 모르면서 수십 가지의 이름을 지었다가 지우곤 했던 것인데, 그 중에 딸아이용으로 '전우리'를 골라잡았다. 우선, 부르기에 부담이 없고, 뜻을 담고 있으면 좋을 성싶어 여러 번을 불러보기도 하고, 써보기도 하고, 음미해 보기도 했다.
홀로 외롭지 않게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을 담고 있는 '우리'. 남을 위할 줄도 알고, 남의 사랑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빌면서 선택한 이름 '전우리'.
첫딸아이가 백일을 지났을 때쯤이었을까.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빨리 보고 싶다고 하시기에 아이를 데리고 처가엘 갔다가 장인어른으로부터 호된 꾸중을 들었다. "애들 이름 가지고 장난치지 말게. 우리가 뭔가? 소우리 인가, 돼지우리인가?"
둘째는 아들이기를 바랐지만, 또 딸이었다. '전 솔'이라 이름 붙였다. 절개 굳은 소나무 송(松)자를 우리말로 바꿔 쓴 것인데, 기호품 담배 중에 공교롭게도 '솔'이 탄생하여 고급품으로 유명해 지고 있었다.
한 번은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동네 의원엘 갔는데 소아과 의사가 둘째 아이의 이름을 보고, 담배이름 같다고 핀잔을 주더라는 것이다. 의원에 다녀온 아내는 그만 아이 이름 때문에 속이 상한 모양이었다.
애 놓기를 그만 둘까하다가 아들 낳기를 시도하였는데, 셋째는 뜻대로 아들이었다. 이름은 '전가람'. 강처럼 도도히 살아가라는 뜻이었으나, 듣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하는 것이다. 우리 동네 찻집이름, 우리 동네 술집이름……. 그래도 세 아이들 모두 우리말 이름이어서 꾀나 유명은 하다.
내 아내는 강아지 이름 하나도 지어 보지 못했었단다. 남이 만들어 붙여 준 이름만을 부르며 살아온 여인인데, 꼭 한 번 이웃집 아이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호적에 올리는데 까지 성공하였는데…….
아내가 지어 준 이웃집 아이의 이름은 임진강(林眞江). 그럴싸한 이름이다. 내 아내나 작명을 요구한 분이 우리말 이름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그리 익숙하지 못해서 한자말로 지은 것인데, 강(江)이름이 아닌가? 그것도 하필이면 6?25 동란으로 조국을 위해 싸우시던 님들의 핏빛으로 물든 임진강? 님들의 혼과 넋이 담긴 참된 강이라면 임진강변의 노란 민들레처럼 활짝 웃으며 도도히 쉼 없이 살아갈 텐데……. '임진강'은 임진강처럼 인생이 흘러갈 것인가.
이래저래, 고유한 의미를 지닌 이름이 소중함을 느끼며, 나는 내가 지어 붙인 이름과 아내가 지어 준 이름을 사랑한다.
나는 내 이름을 사랑한다. 다만, 내 이름에 글월 문(文)자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장군에게 날랠 용(勇)자, 사업가에게 부자 부(富)자, 정치인에게 바를 정(正)자나 큰대(大)자가 어울리지 않던가?
인생이란 그렇게 이름 따라 흘러가는 것이기에……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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