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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가이드 전대수의 수필보기 - 미완성 작품

재첩국 2007. 6. 20. 11:41

한국스피치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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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미완성작품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듣는다. 마침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교향곡을 듣기에는 좋은 분위기가 아닌가.

 

창문에 부딪치는 빗줄기가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듯한 착각을 하면서, 사선을 그으며 내리는 빗줄기가 바이올린의 현인 듯한 착각을 하면서 슈베르트의 곡을 듣는 것이다.

 

인생은 완성이 없는 것이리라. 그러나 완성 지을 수 없는 인생이지만, 나는 뜻을 이루기 위하여 정성을 향하는 등산가의 발걸음처럼 내 인생의 발걸음을 한 걸음씩 딛어가고 있다.

 

나는 부모님께서 48세 되신 그 해 음력 팔월 스무 사흘 날에 태어난 것인데 마을 사람들은 나를 쉰둥이라고 불러댔다. 미취학인 일곱 살, 장형(長兄)께서 '가갸거겨......'를 창호지에 써서 끈을 매어 목에 걸어 주셨고, 나는 '고교구규......'를 외우던 그 때의 그 봄날에 아버지를 여의게 되었는데 그래서 나는 편모의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자랄 수밖에 없었다.

 

20리 길 구례읍의 장날이면 어머니를 따라서 장 구경을 가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데리고 가 주시지를 않았다. 5일장이었으므로 나는 5일 만에 한 번씩 떼를 써 보는 것이었다.

 

한 번은 학교에 가야할 시간에 장에 가시는 어머니의 뒤를 밟아 나선 것이다. 머리에 이고 가시던 짐을 길거리에 내려놓고 돌아서서 준엄하게 꾸짖었으나, 나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길 한복판에 털썩 주저앉아 두 다리를 뻗고 좌우 족을 교대로 비벼대며 생떼를 썼었다. 급해진 어머니께서 체념한 채 걸어가시면 나는 벌떡 일어나 뜻 없는 울음을 울며 쫓아갔고, 또 짐을 내려 좋고 꾸중하시면 또 털부덕 퍼져 앉아서 더 큰 소리로 울어 제꼈었다. 그 날은 끝내 읍내 장터까지 따라가서 구경을 했던 것인데 촌놈이 처음으로 읍내 구경을 한 셈이었다.

 

구례 읍내는 해발 1,915m의 지리산 아래 평야에 앉아 있었고, 우리나라 9대 강 중의 하나인 섬진강은 읍내를 끼고 옆구리를 간지럽히며 하동 포구를 향하여 흐르고 있었다. 수 없이 많은 민중은 아마도 그 날 처음으로 대한 것인데 흙 범벅이 되게 눈물을 흘렸던 탓으로 초상집의 강아지 얼굴보다 꼴볼견이었던 나는 지리산, 섬진강 그리고 민중을 생각하기 시작하였지 않은가.

 

그날 이후, 나는 아침저녁으로 산에 오르는 것을 즐겼다. 멀리 지리산이 보이고, 눈 아래 강물의 흐름이 있었기에 산과 강을 보면서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꿈을 키우면서 뜻을 이루기 위하여 내 자신의 인생을 가꾸어 왔다.

 

그러다가 민중의 대변자가 되어보겠다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던 것인데, 최연소자로 아직은 때가 아닌데다가 맨발로 뛰는 나에게 표가 붙을 리 없는 노릇이었고, 결국에 낙선을 한 나는 '성원에 보답하지 못한 죄인'이 되어 낙선 인사를 다녀야 했다. 그래도 인정 많은 지역 구민들은 한결같이 위로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으나, 가끔은 '정치를 계속 하겠느냐'고 묻는 사람을 대하곤 하였다. 그 때의 내 답은 '내가 살아 있는 한 정치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31살의 나이에 저 세상으로 떠나간 슈베르트는 '내 인생이 끝나지 않듯이 음악은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하였다. 창밖에 비는 그치고, 미완성 교향곡은 끝났다. 그러나 나는 그 곡을 또 들을 것이며, 내가 갈 길을 도도히 걸어갈 것이다.



                           (1991년)